블로그의 첫 글을 무엇로 작성할까 고민하면서 잡지를 보던 중 정말 황당한 제목을 보았다. Misconceptions about “Maslow’s Pyramid” .
우리가 아는 매슬로우 욕구 위계 이론 피라미드에 오해가 있다는 것이다.
해당 경영학을 박사 과정까지 하면서 수도 없이 배운 내용을 이제 와서 “사실 좀 달랐대요”라고 꺼내는 게 약간 민망하기도 하고. 근데 생각해보면 나만 몰랐던 게 아니라 대부분이 그랬을 거라는 생각에 내용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학교 다닐 때 조직행동론 수업 시간에 배웠던 매슬로우 욕구 위계이론이 기억이 생생하다. 교수님이 슬라이드 하나 딱 켜셨는데, 그 유명한 삼각형이었다. 맨 아래 생리적 욕구, 그 위에 안전, 소속감, 존중, 그리고 꼭대기에 자아실현. 시험에도 맨날 나왔고, 각종 조별 과제 발표, 시험에도 빠짐없이 들어갔다. 지금도 많은 경영학 관련 서적에서, 심지어 교과서에도 해당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게 매슬로우가 직접 그린 게 아니라는 걸 안 건 최근 일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에이, 설마 그게 가짜라고?” 싶었는데, 읽을수록 무시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심리학자 존 발라드(John Ballard) 교수가 Psychology Today에 올린 글인데, 그 팀이 매슬로우 원전을 직접 찾아봤다고 한다. 1943년 논문이랑 1954년 책까지. 거기에 피라미드가 없었다는 거다. 애크런 대학교에 매슬로우 관련 자료가 보관돼 있다는데 거기까지 뒤졌다고 하니까, 대충 검색하다 쓴 글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그 피라미드는 어디서 나온 거냐고. 연구팀이 찾아낸 가장 오래된 버전이 1960년 경영 전문지에 실린 거였다. 찰스 맥더미드라는 컨설팅 심리학자가 매슬로우 이론을 관리자들한테 설명하려고 그려넣은 도식이 시초였던 거다.
즉, 해당 그림은 경영학 학계에서 만든 거였고 매슬로우의 원래 의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경영학계에서 만든 것이니 영 수업에서 그렇게 자주 나왔던 거겠지. 묘하게 앞뒤가 맞는다.
근데 이게 단순히 “누가 그렸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더 흥미로운 부분이다.
발라드 교수 팀이 지적한 건, 피라미드라는 형태 자체가 매슬로우가 말하려던 것과 꽤 다르다는 거다. 매슬로우 원문에는 욕구를 순서대로 하나씩 채워야 한다는 말이 없었다. 오히려 사람은 여러 욕구가 동시에, 그것도 부분적으로 충족되고 부분적으로 안 충족된 상태로 살아간다고 썼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3단계 = 사회적 욕구”라고 외웠던 것도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원문에는 “소속감과 사랑(belongingness and love)”이라고 나온다. 단순히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만이 아니라 애정의 영역까지 포함한 개념인데, 번역과 단순화 과정에서 “사회적 욕구”로 뭉뚱그려진 거다.(다행이 위에 캡쳐한 교과서는 3단계를 사회/애정 욕구라고 정리하긴 하였다)
심지어 자아실현이 모든 사람한테 보편적인 최종 목표냐에 대해서도 매슬로우 스스로 확신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문화마다 다를 수 있고, 욕구 순서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본인이 예외를 인정했다는 거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석사 때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팀 프로젝트를 할 때 팀원 동기부여에 대한 발표를 준비한 적이 있었다. 매슬로우 피라미드를 기반으로 “현재 어느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는가”를 분석하는 내용이었는데, 실제로 팀원들한테 적용해보려니 잘 안 맞았다. 어떤 사람은 안정성(2단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 동시에 인정(4단계)에 대한 갈망도 강했다. 피라미드 그대로 이론이 적용 된다면 아래 단계부터 순서대로 채워야 하는데, 현실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냥 “사람이 원래 복잡하니까” 하고 넘어갔는데. 이제 와서 보니까 이론 자체가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았던 거다. 우리가 배운 피라미드 버전은 원래 이론을 너무 평면적으로 만들고 만 것이다.
발라드 교수는 피라미드보다 사다리가 더 맞는 비유라고 했다. 손이랑 발이 동시에 다른 칸에 걸쳐 있는 것처럼, 욕구도 여러 개가 동시에, 다른 정도로 충족되고 충족되지 않으면서 공존한다는 거다. 그게 실제 사람에 더 가깝다고 설명하고.

뭐가 더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이 일을 계기로 하나는 배운 것 같다.
유명한 이론일수록 오히려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너무 많이 인용되고 너무 깔끔하게 정리된 것들은, 어느 순간 원래 내용이 아니라 누군가가 단순화한 버전이 퍼진 경우가 있다. 매슬로우 피라미드처럼.
학교 다닐 때는 그걸 따져볼 여유가 없었다. 시험 범위가 어디까지냐가 더 급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외운 것들이 그대로 상식이 되고, 발표 자료에 들어가고, 후배한테 설명하는 내용이 된다.
솔직히 나도 언젠가 누군가한테 매슬로우 피라미드를 자신 있게 설명한 적이 있을 거다. 생각해보면 좀 민망하다.
참고: John Ballard, Ph.D., “Misconceptions about ‘Maslow’s Pyramid'”, Psychology Today (2026.6.29)